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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축학개론" 속 클래식 음악 해설 & 장면 분석

    2012년 개봉한 한국 영화 건축학개론은 이적 감독이 연출하고, 이제훈, 수지, 엄태웅, 한가인이 주연을 맡은 감성 멜로 드라마입니다. 첫사랑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해가는 감정과 기억의 복원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쇼팽풍 피아노 연주와 클래식적 음악 구조를 활용하여, **회상의 여운과 감정의 깊이**를 고조시키는 데 탁월한 음악 연출을 보여줍니다.

    줄거리 요약: 스무 살의 설렘, 지금의 후회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 편집하며 전개됩니다. 현재, 건축가 승민(엄태웅)은 오래전 첫사랑 서연(한가인)의 의뢰로 제주도에 집을 설계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어색하면서도 깊은 감정의 파동을 느끼며, 각자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대학 신입생이었던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서연(수지)을 처음 만납니다. 음악과 공간을 통해 서서히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특별한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툰 감정 표현과 오해로 인해 결국 사랑은 제대로 시작되지 못한 채 멀어지고 맙니다.

    시간이 흘러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제주도라는 장소를 매개로 다시 만나며 ‘그때’의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승민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감정에 직면하고, 서연은 과거의 오해를 스스로 해소해 나갑니다. 영화는 “사랑은 완성되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기억은 어떻게 현재에 머무는가”를 묻는 잔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클래식 음악 해설: 쇼팽풍 OST와 감정의 리듬

    건축학개론의 OST는 전반적으로 서정적이고 절제된 선율이 중심을 이룹니다. 작곡가 이지수는 클래식 피아노 연주와 스트링의 조합을 활용해, 회상의 감정을 고전적 형식에 담아 전달합니다. 특히 쇼팽의 녹턴, 프렐류드,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테마는 영화의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이끕니다.

    1. "기억의 습작" – 클래식 편곡의 중심
    원곡은 유재하의 감성적인 발라드지만, 영화에서는 피아노 솔로로 편곡된 클래식 버전이 삽입되어 감정선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반복되는 아르페지오와 부드러운 터치가 쇼팽의 서정성과 흡사하며, 단순한 회상 장면을 감정적으로 채웁니다.

    2. "첫사랑의 테마" – Nocturne 형식
    이 테마는 주로 승민이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느린 템포와 반복되는 하모니는 쇼팽 녹턴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여백이 있는 연주가 감정을 억제하면서도 깊이 있게 만듭니다. 이는 쓸쓸한 아름다움과 동시에 감정의 순수함을 전달합니다.

    3. "제주도 장면" – Impressionistic + Classical
    제주도의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드뷔시 풍의 인상주의적 피아노와 클래식 스트링이 결합됩니다. 자연과 감정이 혼합되는 느낌을 클래식적으로 표현하며, 공간과 정서가 만나는 지점을 음악으로 시각화합니다.

    장면 분석: 음악이 감정을 말하는 순간들

    1. 과거의 첫 만남 – 피아노 솔로 테마
    승민과 서연이 처음 교실에서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피아노 솔로가 조용히 흐릅니다. 이때의 음악은 단순한 C장조 진행을 사용하지만, 템포 루바토와 잔잔한 터치가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감정을 전달합니다. 마치 쇼팽의 Preludes처럼, 짧고 명확한 감정의 순간을 붙잡는 역할을 합니다.

    2. 제주도 여행 – 현악 4중주와 인상주의적 흐름
    두 사람이 함께 제주 바닷가를 걷는 장면에서는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현악 편곡이 등장합니다. 감정이 차오르되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순간, 음악은 말 대신 감정을 대신합니다. 영상의 잔잔한 색감과 음악의 결이 맞물려 감정적 집중도가 극대화됩니다.

    3. 마지막 장면 – 기억의 습작 피아노 버전
    서연이 설계된 집에 들어서는 장면, 배경에 흐르는 “기억의 습작” 피아노 버전은 단순한 멜로디 반복이지만, 화성의 진행이 점차 풍성해지며 감정이 해방되는 흐름을 그려냅니다. 클래식 구조로 보면 점점 확대되는 변주 형식이며, 기억과 현재가 하나가 되는 결말을 음악으로 암시합니다.

    결론: 클래식 감성으로 완성된 감정의 건축

    건축학개론은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시간과 공간, 기억과 현재의 구조 속에서 감정을 건축해 나가는 영화입니다. 쇼팽풍 피아노 선율과 클래식 형식의 음악 구성은 인물의 감정선을 절제되게 표현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음악이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클래식 음악의 서정성과 영화적 연출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영상과 대사뿐 아니라 각 장면에 깔리는 음악의 흐름과 구조에도 귀 기울여 보세요. 클래식 음악의 반복, 변화, 여백이 어떻게 감정의 공간을 채우는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을 건축해 나가는 조용한 교향곡이자, 우리 모두의 ‘기억의 습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