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파리넬리(Farinelli)>는 18세기 유럽 음악계를 뒤흔든 전설적인 카스트라토 가수, 카를로 브로스키(예명: 파리넬리)의 삶과 음악,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영화다. 파리넬리는 인간의 목소리로는 낼 수 없을 만큼 광대한 음역대와 기술로 절대적인 찬사를 받았으나, 어린 시절 거세된 희생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는 정체성의 갈등을 겪는다. 이 영화는 단지 음악 전기 영화가 아니라, 육체적 희생과 예술의 대가를 철학적으로 조명한 클래식 기반 예술 영화이다.
1. 줄거리 – 천상의 목소리, 지상의 고통
카를로 브로스키(스테판 브라운슈바이크)는 어린 시절 병약한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의 야망에 따라 거세 수술을 받고 카스트라토가 된다. 형은 작곡가로서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동생의 목소리를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카를로는 '파리넬리'라는 예명을 얻고, 뛰어난 외모와 천상의 목소리로 유럽의 궁정과 오페라 무대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외면적인 성공과 달리, 카를로는 내면의 허전함과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린다. 그는 여성을 사랑할 수 없고, 아이를 가질 수 없으며, 육체적 결핍을 감추기 위해 감정조차 억제하며 살아간다. 그의 인기는 형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것이며, 음악적 성취가 진정한 자신의 것인지에 대한 의심도 깊어진다.
그의 삶은 바닥부터 흔들리게 된다. 그는 한 여성(알렉산드라)를 사랑하게 되지만, 형이 그녀와의 관계조차 조종하려 한다. 이 모든 갈등 속에서 카를로는 음악이라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육체적 결핍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독립적인 길을 선택하려 하지만,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인간으로서의 절망을 동시에 안기는 선택이었다.
영화는 파리넬리의 환상적인 무대 뒤에 숨겨진 고통과 진실, 그리고 예술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마지막 장면은 그가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깊은 상처를 홀로 마주하는 장면으로 끝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2. 클래식 음악 해설 및 장면 분석
1. 헨델 – ‘Lascia ch’io pianga’ (나 울게 하소서)
이 곡은 영화 속에서 파리넬리가 가장 자주 부르는 아리아 중 하나다. 헨델의 대표적인 서정 아리아인 이 곡은, 자유를 갈망하는 슬픔과 인간의 고독을 표현한 곡으로, 카를로의 운명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무대 위에서 이 곡을 부를 때 관객은 환호하지만, 그의 눈빛은 공허함을 담고 있다.
‘나 울게 하소서’는 단지 감정을 자극하는 곡이 아니라, 카스트라토의 정체성과 속박된 삶을 대변하는 주제곡처럼 사용된다. 음악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고통이 스며 있다.
2. 스카를라티 – 고음의 기술, 인간을 넘은 음역
영화는 파리넬리의 노래가 실제 여성 소프라노와 남성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를 합성하여 재현되었음을 밝힌다. 그만큼 인간이 낼 수 없는 목소리, 초현실적 음역대를 표현하고자 했고, 스카를라티의 아리아에서 그 기술은 정점을 찍는다. 고음의 화려한 기교는 청중에게는 황홀경이지만, 카를로에게는 '인간을 잃은 대가'의 상징이다.
이 곡들이 연주될 때마다 형 리카르도는 무대 뒤에서 지휘하거나 조정하고 있으며, 음악은 형제의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리카르도에게 음악은 수단이지만, 카를로에게 음악은 고통의 출구이자 정체성의 유일한 표현이 된다.
3. 음악이 만든 감옥 – 무대 위의 고독
파리넬리가 궁정 무대에서 공연할 때의 장면은 화려한 의상과 군중의 환호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음악 속에는 단 한 순간의 해방도 없다. 무대는 오히려 그에게 감옥이다. 클래식 음악은 그를 높이 올려주지만, 동시에 육체의 자유와 감정의 해방을 앗아간다.
음악이 영혼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미션>에서도 드러났지만, <파리넬리>에선 음악이 곧 속박이고 운명이다. 클래식의 아름다움이 이토록 잔혹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드물다.
결론 – 목소리는 하늘로, 마음은 감옥으로
<파리넬리>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했던 잔혹한 대가에 대한 이야기다. 클래식 음악은 이 작품에서 예술의 찬란함이자, 동시에 인물의 고통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헨델과 스카를라티, 그리고 그 이름 모를 수많은 작곡가의 아리아는 파리넬리라는 존재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드는 동시에,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지만, 그 목소리를 위해 희생된 인간성은 회복되지 않는다. 예술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는가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클래식으로 그려낸 독특한 비극이다.